2025년 상반기 한국 영화계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바로 "4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성적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제는 산업 전반의 구조적 위기와 콘텐츠 경쟁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400만 돌파’라는 마지노선
한국 영화계에서 400만 관객은 하나의 기준선이었다. 제작비를 회수하고 수익을 내기 위한 현실적 목표였고, ‘흥행 성공작’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한 상징적 수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2025년 상반기, 이 상징이 무너졌다.
한때는 계절별로 400만 관객을 넘는 영화가 연달아 나왔고, 천만 관객 작품이 매년 한두 편씩 탄생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비수기가 아닌 상반기 전체에서 400만을 넘긴 작품이 ‘0편’. 이는 팬데믹 시기를 포함해도 거의 전례 없는 일이다.
관객의 외면, 단순한 불황은 아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관객 수 감소는 ‘극장가 침체’라는 말로 설명된다. OTT의 성장, 물가 상승, 여가 활동 다양화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환경 탓으로만 돌리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다.
관객은 여전히 영화를 본다. 다만 극장에서 보지 않을 뿐이다. 넷플릭스, 디즈니+, 웨이브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수많은 콘텐츠를 접할 수 있고, 그중에는 한국 콘텐츠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문제는 ‘영화’가 아니라 ‘극장에서 볼 만큼 매력적인 영화가 없다’는 것일 수 있다.
상업 영화의 공백, 반복되는 안전한 선택
2025년 상반기 주요 개봉작들을 보면, 다수는 과거 성공했던 공식의 반복이다. ‘검증된 배우’, ‘익숙한 장르’, ‘무난한 스토리’, ‘확실한 타깃’... 그러나 이 ‘안전한 선택’들이 이제는 오히려 무기력한 패턴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관객은 새로운 경험을 원한다. 하지만 제작사들은 흥행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모험을 하지 않는다. 결국,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 뻔한 전개, 반복된 캐릭터들이 스크린을 채우고, 관객은 지갑을 열지 않는다.
OTT와 비교되는 영화의 무기력
OTT 콘텐츠는 지금도 실험하고 있다. 시청자의 반응을 빠르게 분석하고, 장르를 넘나드는 시도를 지속한다. 웹툰 원작, 여성 서사, 틈새 장르… OTT는 다채롭고 입체적인 콘텐츠를 쏟아낸다.
반면 극장용 한국 영화는 여전히 ‘남성 중심 액션’, ‘범죄 스릴러’, ‘코믹 가족물’ 위주로 돌아간다. 새로운 서사, 다양한 목소리, 사회적 통찰력 있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콘텐츠의 문제가 아니라, 기획의 창의성과 산업 구조의 경직성을 반영하는 결과다.
구조 개편 없이 반등은 없다
현재의 문제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한두 편의 실패 때문이 아니다. 이는 산업 전반의 시스템 리셋이 필요한 신호다. 몇 가지 구조적 제안을 해보자.
- 창작자 중심의 투자 구조 개편
투자사 중심의 하향식 제작 구조에서, 작가·감독 중심의 창의적 제작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 장르 다변화와 마이크로 타깃팅 강화
10~20대 여성, 중장년층, 시니어 관객 등 세분화된 관객을 겨냥한 콘텐츠 기획이 필요하다.
- OTT와의 협업 및 병행 배급 실험
극장 개봉 후 OTT 공개가 아닌, 동시 개봉 및 크로스 마케팅 등 새로운 배급 전략이 요구된다.
- 지방 영화관 및 예술극장과의 네트워크 확장
수도권 중심의 흥행 구조를 깨고, 지역 관객과 더 깊이 호흡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영화는 끝났는가? 아니다, 지금이 시작이다
지금의 위기는 산업의 퇴보가 아니라, 재도약을 위한 구조 전환의 기회다. 한때 ‘10년은 뒤처졌다’고 평가받던 K-드라마는 지금 세계를 흔들고 있다. 한국 영화도 마찬가지다. 구조를 바꾸고, 스토리를 새롭게 정의하며, 관객과의 ‘다시 만나기’를 위한 준비가 필요할 뿐이다.
관객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좋은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누가 그 이야기를, 어떤 형식으로, 어떤 플랫폼에서 전달할 것인가이다.
마무리하며
2025년 상반기, 400만 돌파 작품이 없는 것은 경고등이자 기회다. 이제 우리는 ‘잘 만든 영화’보다 ‘새로운 영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스크린을 다시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진짜 창작의 시대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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