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왜 재미없어?”
수학 문제집을 펴던 딸아이가 연필을 휙 내려놓으며 말했다. 엉덩이는 의자 끝에만 걸치고, 두 다리는 옆 의자에 올려둔 채였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어릴 적 내 모습이 겹쳐져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말, 그 자세, 그 표정. 내가 예전에 수도 없이 반복했던 말이기도 했다. 공부는 왜 이토록 재미가 없을까?
우리 딸 유라는 서울 강북구에 있는 대안학교, 삼각산재미난학교에 다닌다. 시험도 없고 성적도 없는 곳이지만, 국어, 수학, 과학 같은 교과 수업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 대신 아이들이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자기 속도로 실천하는 방식이다.
이번 여름방학, 유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매일 수학 문제집 한 장 풀기, 또 하나는 자전거 타기나 배드민턴 치기. 그런데 올여름은 유난히 덥고 비가 많아 운동은 거의 하지 못했고, 문제집 앞에 앉는 시간만 조금씩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문제를 몇 개 풀다가 손이 멈췄고, 유라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이걸 꼭 알아야 해? 어른 되면 이런 거 쓰지도 않잖아.”
그 말은 단지 수학 문제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자기 시간을 써야 하는 모든 공부에 대한 솔직한 회의였다.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은, 나 역시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맞아. 공부가 재미없는 순간이 많아. 하지만 잘 생각해 봐. 수영, 태권도, 훌라후프, 줄넘기, 공기놀이… 이 중 처음부터 재미있었던 게 있었을까? 계속하다 보니 잘하게 되었고, 잘하니까 재미있어진 거 아닐까?”
공부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재미있는 건 거의 없다. 재미있어지기 전에 익숙해지는 게 먼저다. 그리고 익숙해진 뒤에야, 그게 어디에 쓰이는지 알게 되고, 그때부터 조금씩 재미가 생기기도 한다.
며칠 후, 딸에게서 작은 변화가 생겼다. 유라는 요즘 햄스터를 키우고 싶어 한다. 아내와 나는 ‘생명은 쉽게 데려오는 게 아니다’라며 며칠째 고민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저녁, 딸은 노트북 앞에서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처음엔 아이돌 영상을 보는 줄 알았는데, 곁눈질로 보니 유튜브 화면에 나온 건 햄스터 관련 영상들이었다.
잠시 후, 유라는 내게 A4 한 장 가득 채운 정리 자료를 보여주었다. 햄스터 종류, 습성, 먹이, 사육장 구성, 필요한 물품, 심지어 주의해야 할 사항들까지 꼼꼼히 적혀 있었다. 그걸 본 아내는 감탄하며 물었다.
“유라야, 이거 네가 다 정리한 거야? 힘들지 않았어?”
딸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아니, 재미있었어. 알고 싶은 걸 찾아서 정리하니까 다음에 또 안 찾아봐도 되고, 이것만 보면 다 알 수 있어서 편해.”
그 말을 듣고 나는 확신했다. 공부는 억지로 앉아서 하는 게 아니라, 궁금해서 스스로 파고들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걸. 아이가 주도권을 가질 때, 배움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된다. 햄스터 정리는 단순한 사육정보 수집이 아니었다. 딸에게는 자신의 동기에 따라 움직이는 최고의 공부였다.
부모는 아이가 해야 할 것을 밀어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하고 싶은 걸 찾도록 기다려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녀가 스스로 필요를 느끼고 배워나갈 때, 그것이야말로 진짜 공부가 된다. 우리는 살아가며 점점 잊고 살지만, 아이를 통해 다시 알게 된다. 삶 그 자체가 가장 진짜인 배움이라는 걸.
나는 딸에게 꼭 전하고 싶은 문장이 있다.
“네가 진짜 궁금해하는 걸 스스로 찾아 나설 때, 그게 바로 공부야.”
그리고 이 문장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
“삶을 배우는 모든 순간이, 공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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