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투자의 실력은 꾸준함에서 만들어진다. 투자 초보였던 나는 늘 흔들렸다. 뉴스 한 줄, 수익률 -3%만 봐도 마음이 출렁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하나씩 깨달았다. 실력을 만든 건 공부가 아니라 ‘꾸준함’이었다. 돈이 늘어나기 전에 먼저 늘어난 건 내가 세운 원칙을 지키려는 ‘인내력’이었다.
우리는 시장을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만의 기준은 만들 수 있다. 이 기준은 누구도 정해줄 수 없다. 다만 스스로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세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
첫째, 미국 ETF에 투자하자. 수백 개 우량기업에 분산 투자할 수 있다. 시장 전체에 투자하면 분석보다 인내가 중요해진다. 둘째, 매달 같은 날, 같은 금액을 적립식으로 투자하자. 타이밍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주가를 보지 않는다. 꾸준함이 시장을 이긴다. 셋째, 팔지 않는다. 돈이 필요할 때만 일부 매도한다. 주식은 보유하기 위해 산다. 자산가는 거래보다 보유로 이익을 만든다.
원칙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경험하고 흔들리고 후회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더 중요한 건, 원칙을 세우는 것보다 지키는 게 어렵다는 점이다. 그 어려움을 이기는 사람만이 꾸준한 수익, 흔들림 없는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믿는 힘을 얻게 된다.
나는 이런 문장을 늘 곱씹는다.
“투자는 돈의 싸움이 아니라 태도의 싸움이다.”
누구는 운이 좋았고, 누구는 좋은 타이밍에 들어갔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긴 시간 후엔 한 가지 질문만 남는다. “당신은 그 원칙을 얼마나 지켜냈는가?” 시장에 흔들려도 괜찮다. 단, 돌아올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 원칙이 결국 나를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투자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마음의 평안이다
돈보다 중요한 건, 나를 지키는 힘. 나는 투자를 하면서 수익도 얻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걸 하나 얻었다. 바로 ‘마음의 평안’이다. 예전엔 돈이 없어서 불안했고, 투자를 시작한 뒤에는 주가 때문에 불안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엔 수익률이 전부였다. 빨리 벌고, 많이 벌고, 잘 벌고 싶었다. 주식창을 하루에도 수십 번 들여다봤다. 마이너스가 뜨면 괜히 밥맛도 없고, 플러스가 뜨면 괜히 우쭐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수익이 나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늘 다음 하락을 걱정했고, 다음 타이밍을 재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진짜 얻고 싶은 건 뭘까?”
지금은 다르다. 나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첫째, 좋은 종목을 고르고 둘째, 매월 일정 금액을 적립하고 셋째, 내 원칙을 지키는 것. 그 외의 건 시장이 결정할 일이다.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일을 할 뿐이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하락장이 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기회라 생각한다. 내가 잘 아는 회사라면, 싸게 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투자로 돈을 벌고 싶어 한다. 맞다. 돈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돈을 대하는 나의 태도”다. 이 태도가 안정될 때 비로소 수익률이 아니라 ‘삶의 리듬’이 달라진다. 마음이 평안하니 더 이상 불안 때문에 손절하지 않는다. 욕심 때문에 몰빵하지도 않는다.
지금 여유가 없더라도, 미래에 대한 믿음으로 오늘을 버틴다.
“나는 수익률보다 평안을 택할 수 있는가?”
“나는 지금, 투자로 인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가?”
투자란 결국, 숫자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아는 사람만이 올바른 투자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투자가 마음의 평안으로 이어질 때, 우린 비로소 돈을 넘어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간다.
728x90
반응형
'마인드tv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서학개미의 등장, 미국 ETF를 통해 한국 시장에 베팅하는 투자자들 (1) | 2025.07.06 |
---|---|
TIGER 미국나스닥100 ETF, 순자산 5조 원 돌파 (5) | 2025.07.04 |
투자 원칙은 삶의 원칙이다 (1) | 2025.07.02 |
꾸준함은 재능이다 (1) | 2025.07.02 |
투자자는 ‘속도’보다 ‘방향’을 본다 (2) | 2025.07.02 |
댓글